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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각사각 2016. 3. 1. 15:53[아키미라] 겨울
겨울
아키히토x미라이
#모든_기억을_잊고_싶은으로_시작하는_글쓰기
모든 기억을 잊고 싶은 일상의 연속에 나는 존재한다. 네가 사라진 잿빛 세상의 틈을 메우기라도 하듯 한없이 흩날리는 눈송이를 치어다보고 있노라면 네가 눈이 되어 나리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어쩌면 넌 눈보다도 빛나는 존재가 되어 먼 우주를 날고 있는지도 모르지. 네 희생을 딛고 살아가는 나의 두 눈으로는 감히 담을 수 없을 만큼이나 아름다운, 네 이름을 한 자 한 자 곱씹던 입술마저 별안간 그 달싹임을 주체하지 못하게 만드는 존재가 되어서.
겨울녘 시린 바람은 끈질기게 시선을 따라 달려든다. 시야는 희미해져만 가고 얇은 살 껍데기에 불과한 눈꺼풀은 머잖아 힘을 잃고 스러진다. 널 좇던 하늘은 이제 없다. 내가 마주하고 있는 건 마음 어딘가에서 왈칵 엎질러져, 그 어귀에서 한참을 맴돌다 끝내 내 시야를 완전히 잠식해버린 공허함 뿐.
나의 깊은 심연과 마주할 때, 나는 한없이 어린 모습을 하고 있다. 고통스러운 아픔보다는 피에 젖어든 소매를 감추기에 급급했던 어린 날. 다시는 마주하고 싶지 않은 기억들은 발목부터 차오르기 시작하여 허리를 스치고 마침내 쓰디쓴 파도가 되어 날 덮친다. 그 순간만큼은 살아 숨 쉬는 모든 것들이 날 떠나버린 것 같다는 절망스러운 구절에 고개를 끄덕일 수 있었다. 숨이 막혔다. 하지만 그 순간에 다다라서야 나는 다른 것들을 놓아버릴 수 있었고, 그 빈 품에 너와의 기억을 온전히 담아낼 수 있었다. 그런 나에게 선택권이 있을 리는 만무했으니…… 과연 그 품에 옛 기억이 아닌 너 그 자체를 담을 수 있는 날이 올까.
온몸을 적셔오는 물기에 서서히 눈꺼풀을 들어 올린다. 눈은 그칠 줄 모르고 여전히 나리고 있다. 눈앞에서 새하얗게 흩어져 버리던 네가 자꾸만 아른거리는 이 겨울은 얼마나 긴 밤을 지나야 끝날 터인지. 바람을 타고 날아드는 눈송이가 징그럽기도 하다. 문득 네 말버릇이 뇌리를 스친다.
"불쾌해요 … "
읊조리는 목소리에는 축축한 물기가 서린다. 애틋한 기억이 목구멍을 울린다. 여태 혀끝에서만 머물던 그리움은 뜨뜻한 이슬이 되어 뺨을 스치고 바닥을 향해 추락한다. 그 물방울을 내가 잡을 수 없었듯, 나도 널 잡을 수는 없었던 걸까. 오늘 밤도, 어젯밤도, 그 어떤 날의 밤에도 나는 불쾌하다 외치던 네가 불쾌할 정도로 보고 싶었다.
언젠가, 네가 돌아온다면 … 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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